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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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어: Dieu et mon droit (프랑스어: 하느님과 나의 권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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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하느님, 여왕을 지켜 주소서!4 | |||||
| 수도 | 사실상 런던 51°30′N, 0°7′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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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용어 | 사실상 영어5 | ||||
| 정부 형태 | 입헌군주제 엘리자베스 2세 고든 브라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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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 아일랜드 합병 |
1801년 1월 1일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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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적 • 전체 • 내수면 비율 |
244,820 km² (77위) 1.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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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구 • 2004년 어림 • 2001년 조사 • 인구 밀도 |
59,834,900명 (21위) 58,789,194명 246.5명/km² (33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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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DP (PPP) • 전체 • 일인당 |
2005년 어림값 $1조 8,258억 (6위) $30,658 (18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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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I • 2003년 조사 |
0.939 (15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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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화 | 파운드 (£) (ISO 4217:GB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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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대 • 여름 시간 |
GMT (UTC+0) (UTC+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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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3166-1 | 8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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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SO 3166-1 alpha-2 | GB | ||||
| ISO 3166-1 alpha-3 | GBR | ||||
| 인터넷 도메인 | .uk8 | ||||
| 국제 전화 | +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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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 지방에서 쓰이는 언어로는 다음과 같다:
2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의 문장을 사용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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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 왕국(-北아일랜드 聯合王國,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문화어: 대브리텐 및 북아일랜드 련합왕국), 줄여서 연합 왕국(United Kingdom) 영국(英國)은 유럽 서북 해안의 섬나라로, 북해, 영국 해협, 아일랜드 해 및 대서양에 둘러싸여 있다. 이외에 영국의 군주 밑에 해외 영토가 있으나, 영국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그레이트브리튼 섬의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 아일랜드 섬 북쪽의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져 있다. 아일랜드 섬의 아일랜드 공화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편집] 국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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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은 그레이트 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며, 영국 연합왕국이라고도 한다. 북대서양과 북해 사이에 위치하며, 프랑스 북서쪽에 자리잡고 있다. 국토는 그레이트 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의 1/6을 차지하는 북아일랜드 및 그 주위에 분포되어 있는 몇 개의 속도군(屬島群)과 해외령을 포함한다. 맨섬과 채널 제도는 왕실속령으로서 영국 정부의 국방 및 외교 관할을 받는다.
[편집]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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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 및 스코틀랜드 왕국은 따로 나뉜 주권자와 독립한 국가로서 그들의 자신의 군주와 정치적인 구조를 가지며 9세기부터 존재해 왔다. 일단 웨일스 공국이 1284년에 런들랜 법(Statute of Rhuddlan)에 따라 잉글랜드 왕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603년부터 왕국연합(Union of the Crowns)이라는 동군연합 상태였던 잉글랜드(웨일스를 포함한)는, 합병령 1707(Acts of Union 1707)에서 스코틀랜드와 합병하였다. 이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의 형태로 정치적 연합이 이루어졌다.[1] 합병령 1800(Act of Union 1800)은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에 아일랜드 왕국을 병합시켰다. 당시 아일랜드는 리머릭 조약(Treaty of Limerick)에 따라 1541년부터 1691년까지 점차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아 가던 상태였다. 그에 따라 1801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 왕국이 성립하였다.[2]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 독립은 2년 전에 아일랜드 섬의 분할에 따른 결과이며, 얼스터 지방(province)의 9개 주(county) 가운데 6개 주가, 1927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뀐 영국령으로 남겨졌다.[3](이 시기에 대브리튼 또는 브리튼은 영국을 구성하는 국가(구성 국가) 4개 가운데 3개, 즉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및 웨일스를 공동으로 언급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연합왕국 또는 영국은 네 번째 국가인 북아일랜드를 포함한다.)
영국은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정보 및 유력한 문학과 연극의 전통을 가진 계몽시대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다음 세기 내내 영국은 문학, 예술 및 과학에 획기적으로 공헌한 의회 민주주의와 같은 서양 사상의 발전에서 주역이 되었다.[4] 초기 대영 제국의 부는 다른 강국처럼 역시 1750년 이후에 있었던 노예무역의 산업화를 포함한 식민 착취에 의해 그 일부는 생성되었다. 18세기 영국의 노예 매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했던 영국 함대가 아프리카 노예를 아메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악명 높은 삼각무역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영국은 노예무역법을 만들어, 영원히 노예 무역을 금지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산업혁명 뒤에, 그리고 나폴레옹 전쟁에서 나폴레옹을 격파한 뒤에, 영국은 19세기의 주요 세력이 되었다. 영국과 법적으로 영국에서 분리되었으나 영국이 실제로 통치하는 지역 둘 다로 여겨지는 대영 제국이 절정기일 때, 영국은 지구의 약 4분의 1(1/4)에 가졌으며, 인구는 세계 인구의 4분의 1(1/4)이었다. 이는 역사에서 가장 큰 인구와 영토이다. 당시 대영 제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일컬어졌다. 1910년대 후반에는 이라크까지 점령하였다.
19세기 내내 영국은 다당제의 출현과 투표권의 확장을 통해 부분적으로 의회 민주주의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과학과 예술의 발달은 18세기에 이루어진 아이작 뉴턴 등의 업적을 계승하거나 부분적으로 더 오래된 문학의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영국은 탁월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1921년에는 제1차 세계 대전 뒤에 국제 연맹 위임 통치령이 되었던 독일 제국과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를 획득하여 최대로 넓어졌다.
전쟁에서 벗어난 뒤에 세계 최초로 거대한 국제 방송망인 BBC가 생겨났다. 영국의 노동 운동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장해 왔고, 1924년에 제1차 노동당 내각이 집권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은,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를 포함한 영국 연방과 연합하여, 그리고 나중에는 연합국과 연합하여 나치 독일과 싸웠다. 전시 지도자 윈스턴 처칠과 그의 후임 클레먼트 애틀리(Clement Attlee)는 3대 강국의 한 축으로 전후 세계를 계획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은 영국을 재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타격을 주었다. 경제적으로 비싼 전시 대부금, 미국과 캐나다에서 1945년에 빌려준 대부금이 전후에 미국의 마셜 플랜 원조와 합쳐져서 영국은 복구되기 시작하였다.
1945년에 영국에서의 복지 국가와 세계 최초이면서 가장 광범위한 의료 제도의 출현을, 경제 복구의 요구가 영국 연방 도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다민족 국가 영국을 만드는 동안 보여주었다. 전후 영국의 정치적 역할의 한계가 1956년 수에즈 사태에서 확실해짐에 따라 영어의 국제적 통용은, 동시에 1960년대에 영국의 대중 문화는 외국에까지 퍼지는 동안, 영문학이나 영국 문화에 지속적인 충격을 주었음을 뜻한다. 1970년대에 국제 경제의 하향세 이후 경기 침체와 산업 쟁의의 시대에 뒤이어 1980년대는 마거릿 대처 수상이 지도력을 보여주었다. 그녀가 전후 정치적 경제적인 전환점을 보여주었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지지자는 그녀가 경제 부흥을 이루었다고 하고, 비판자은 그녀 때문에 사회불균형이 더 커졌다고 말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나아가 이러한 경향이 토니 블레어의 지도 아래 대부분 계속되었다.
영국은 1973년부터 줄곧 유럽 연합의 구성원이다. 오늘날 노동당 내각의 태도는 유럽연합과의 통합으로,[5] 보수당은 몇몇 권리와 자격의 반환으로[6] 그리고 자유민주당은 현재 정책의 지지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편집] 지리
- 이 부분의 본문은 영국의 지리입니다.
영국은 브리튼 제도와 아일랜드 섬의 북동부에 자리잡은 북아일랜드로 이루어진 섬나라이다. 서쪽으로 대서양이, 동쪽으로는 북해가 자리잡고 있으며 남쪽의 도버 해협을 사이에 두고 프랑스와 인접해 있다. 남북으로는 북위 49도에서 52도(세틀랜드 섬은 62도)에 이르며 동서로는 동경 2도에서 서경 8도사이에 놓여 있다.
잉글랜드는 브리튼 섬의 남부 저지대로 면적은 섬 전체의 절반 가량인 130,41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스코틀랜드는 북부 고지대로 78,789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며, 서부 고지대인 웨일즈는 20,758 제곱킬로미터, 북아일랜드는 14,160 제곱킬로미터 정도이다.
[편집] 지형
지형적으로는 동남부의 저지(低地)와, 북서부의 고지로 크게 나뉜다. 이 둘의 경계는 동부 해안 중앙부의 티스 강 하구와 남부 해안의 라임만을 연결하는 선이다. 고지라고 해도 대부분은 고도 1,000m 이하의 낮은 산맥 및 구릉으로서 영국의 최고봉 벤네비스 산도 1,343m에 지나지 않는다. 고지는 지형과 지질이 다른 다음과 같은 지괴(地塊)로 나뉜다. 스코틀랜드 고지와 북아일랜드는 주로 캄브리아계의 가장 오랜 변성암(變成巖)으로 되어 있으며, 스코틀랜드 남부 산지, 캄브리아 산지(호수 지방) 및 웨일스는 주로 고생대(古生代) 실루리아계의 변성암으로 되어 있다. 페나인 산맥과 스코틀랜드 중앙 지구대는 고생대의 석탄계와 중생대 삼첩계(三疊系)로 이루어져 있으며, 여기에다 석탄층이 있어 영국의 탄전(炭田)을 형성하고 있다. 웨일스 남부와 데번 코른월 지괴는 고생대 데번계로 되어 있다.한편 저지는 잉글랜드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해발 300m 이하의 낮은 구릉과 평야로 되어 있다. 구릉은 백악계(白堊系)와 제3계의 느리게 주름잡힌 새 지층으로 이루어져 각지에 케스타 지형이 보인다. 영국은 제4기 홍적세(洪積世)에 유럽 대륙에서 뻗친 대륙 빙하에 덮여 있었으므로 산지에는 빙식(氷蝕) 지형이 많으며, 황토에 뒤덮인 황무지와 습지가 많다. 더구나 북쪽의 스코틀랜드 제도에는 피오르드 해안이 발달해 있다.템스 강(전체길이 350㎞)을 비롯하여 이 나라의 하천은 모두 짧으며 또 산지도 낮으므로 하천의 충적(沖積)작용은 크지 않다. 그래서 템스 강 하구부, 브리스틀 해협, 포스만 등처럼 묻혀 버린 협만(峽灣, 에스튜어리)이 많으며, 해안선은 굴곡이 많고 하천의 경사가 완만하므로 향항과 가항하천(可航河川)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편집] 기후
중위도(中緯度) 대륙 서해안의 해양성 기후로서 멕시코 만류(灣流)와 편서풍(偏西風) 때문에 위도에 비해서는 따뜻하다(1월의 기온 6∼3°C). 그러나 겨울에는 간혹 섭씨 영하 1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기도 하며 여름에는 섭씨 35도까지 오르기도 한다. 비는 서해안에는 많으나 동해안에는 적다. 또 습기가 많기 때문에 안개가 많으며, 특히 런던에서는 스모그(Smog, 煙霧)가 1년에 90일 동안 생겨서 ‘안개의 도시’라고도 불린다.연평균 강수량은 서부와 북부의 산간 지방에서는 1,600㎜이상이지만 중부와 동부 지역에서는 800㎜미만이다. 비는 연중 고루 내리는 편이지만 평균적으로 3월부터 6월가지가 비가 가장 적고 9월부터 1월까지가 가장 많은 시기이다.
[편집] 주요 도시
- 인구 7백만 명 이상: 런던
- 인구 1백만 명 이상: 버밍엄
- 인구 50만 명 이상: 글래스고
- 인구 40만 명~50만 명: 리버풀, 리즈, 쉬필드, 에든버러, 브리스톨
- 인구 30만 명~40만 명: 맨체스터, 레스터, 코번트리, 킹스턴 어폰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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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주요 도시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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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런던(London)영국의 수도. 세계 3대 도시의 하나인 런던은 세 가지 면을 가지고 있다. ‘시티(City)’라고 불리는 순수한 런던으로서, 전통과 격식을 중히 여기며 세계 상거래의 중심으로 되어 있다. 런던 시티는 19세기부터 내려오는 행정단위로서, 약 300만이다. 대(大) 런던(Greater London)은 1965년 4월부터 시의 구역을 확대해서 새로 발족한 것으로 인구는 764만면(2000)이다. 그러나 대런던의 시가지는 그린벨트를 넘어서 반경 70∼80㎞까지 펼쳐져 있다.런던의 역사는 기원전 로마 사람이 요새를 만들어 정주(定住)한 데서 시작된다. 중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상업과 정치의 중심이 되어 수공업도 발달했으며, 특히 산업혁명기 이후는 발달이 눈부셨는데 현재의 상점가나 공업지구의 원형(原形)이 만들어졌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대형선박이 템스강을 거슬러 올라가서 런던을 중심으로 한 도로·철도가 정비되어, 1890년에는 지하철도 개통했다.런던은 로마시대의 자취를 비롯하여 근대 건축에 이르기가지 새것과 낡은 것이 섞여 있다. 특히 동물원이 있는 리젠트 파크, 가두연사(街頭演士)들의 집합지로 알려진 하이드 파크를 비롯하여 잔디와 연못이 조화를 이룬 큰 공원 이외에도 잔디와 화단의 광장이 대단히 많아서 시민의 휴식처로 되어 있다. [편집] 플리머스(Plymouth)인구 24만 718명(2001). 데번셔의 영국 해협에 면한 항구 도시로서 해군의 근거지이며, 외국무역도 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세계 탐험기(探險期)의 기지로서 알려져 있으며, 메이플라워 호도 이곳을 최후의 기항지(寄港地)로 하여 미국으로 향했었다. [편집] 사우샘프턴(Southampton)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의 거리에 있으므로 그 외항(外港)으로서의 구실을 하며, 영국에 출입하는 여객선의 50%는 이 항구를 이용한다. [편집] 포츠머스(Portsmouth)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군항도시. 해수욕장으로서도 유명하다. 여기서 태어난 작가 디킨스를 기념하는 도서관이 있다. [편집] 옥스퍼드(Oxford)런던의 북서쪽 약 100㎞, 템스강의 상류에 있는 12세기 이래의 대학 도시이다. 인구 약 13만(2001). 옥스퍼드는 농산물 거래 중심지이며 목재·농산물 가공업이 성하다. [편집] 케임브리지(Cambridge)케임강가에 딸려 있는 대학도시. 인구 10만 2,300명(2001). 13세기 초에 옥스퍼드와 파리 대학에서 이전해 온 학자에 의하여 대학이 설립되고, 산재해 있는 컬리지를 둘러싸고 도시가 이루어져 있다. [편집] 브리스틀(Bristol)인구 39만 9,600명(1999). 잉글랜드 서부의 에이번강에 딸린 항구 도시. 하구에서 13㎞의 지점에 있으며 철도도 모여 있어서 교통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시의 남쪽에는 탄전(炭田)이 있고 금속공업 이외에도 조선·화학·항공기제조공업이 성하다. [편집] 노팅엄(Nottingham)인구 26만 6,995명(2001). 레이스, 메리야스 공업이 발달해 있고 역사적으로 산업혁명기의 기계파괴운동과 차티스트(Chartist)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편집] 버밍엄(Birmingham)인구 약 227만 1,000명(2000)으로, 런던 다음가는 대도시. 석탄과 철광석이 나며, 운하에 의하여 각지와 연결되어 있으므로 금속, 기계를 중심으로 하는 대공업지대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버밍엄을 중심으로 연합도시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것이 ‘블랙 컨트리’라고 불리는 미들랜즈의 공업지대이다. [편집] 리버풀(Liverpool)인구 42만 2,450명(1999). 머지강 유역에 위치한 영국 제2의 항구로서 북아메리카, 서인도와의 교통의 중심지로서 발달했다. 이곳의 수출입은 영국 무역 총액의 3분의 1을 차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면화로서 영국의 면화 거래를 좌우하고 있다. [편집] 맨체스터(Manchester)인구 39만 2,819명(2001). 기계·화학·면업(綿業)의 공업도시. 전장 50㎞의 맨체스터 운하에 의해 바다와 연결되어 수입 면화에 의존한 면업이 이 지역에서 발달하여 면직물 거래의 일대 중심지로 되었다. 옛 공업도시인 만큼 3분의 1이 슬럼화(slum 化)한 도시라고 불렸으나 재개발이 급속히 진행되어 교통·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편집] 셰필드(Sheffield)인구 51만 3,234명(2001). 독일의 조오링겐, 스웨덴의 에시르스투나에 비길 만한 제강(製鋼)·도물공업(刀物工業)의 중심 도시. 16세기부터 훌륭한 강철을 생산하며 현재도 특수강의 중요한 산지로 되어 있다. 칼 종류의 생산은 종업원 300명을 넘는 공장도 있으나 대부분은 중소 공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셰필드대학에는 동양 연구 센터가 있다. [편집] 헐(Hull)인구 약 27만(1992). 이 나라 제3의 항구. 런던이나 리버풀에 비하면 어항으로서의 역할이 크다. 한때 포경어업의 기지로서 중요했는데, 지금도 원양어업의 기지이다. 공업으로서는 그전의 섬유 대신에 금속·기계로 바뀌어 번성하고 있다. [편집] 리즈(Leeds)인구 71만 5,404명(2001). 요크셔 최대의 도시로서 에어강에 향해 있으며 잉글랜드의 동서양 해안의 거의 중간에 자리잡고 있는데 양안과 일찍부터 운하로 연결되어 있었다. 리즈는 모직물 공업과 그 거래의 중심지로서 알려져 있다. 리즈대학은 여섯 학부가 있는데 모직물공업 관계의 연구가 충실하다. 리즈를 중심으로 하는 여섯 시(市)는 연합 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편집] 뉴캐슬(New Castle)인구 19만 2,000. 잉글랜드 북동부 공업지역의 중심 도시. 정식 명칭은 뉴캐슬 어펀 타인으로서, 타인강의 하구에서 13㎞ 상류의 북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 도시는 로마시대의 성채(城砦) 도시로서 발달했는데 11세기가 되어서는 스코틀랜드에 대한 방위의 목적으로 새로운 성채가 만들어졌기 때문에 뉴캐슬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편집] 카디프(Cardiff)인구 31만 5,040명(1999). 웨일스의 수도인 동시에 공업 생산과 항만 기능에 있어서도 웨일스를 대표하는 도시이다. 시의 중앙부에는 주청(州廳)과 국립박물관 등이 공원을 끼고 아름답게 늘어서 있으며, 그 남쪽에는 1090년에 세워진 카디프 성이 잔디 가운데에 솟아 있다. 민속박물관에는 웨일스의 전통과 생활의 변화를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가 풍부하게 진열되어 있다. [편집] 스완지(Swansea)인구 약 23만(1996). 남웨일스의 대표적 공업도시의 하나. 해안 가까이까지 다가선 약간 높은 구릉의 골짜기 사이에 전개되어 있는 공장 집단들과 언덕의 허리를 이용한 주택들이 대조적이다. 시의 변두리에는 웨일스대학이 있다. [편집] 에든버러(Edinburgh)인구 약 44만(1996). 스코틀랜드의 수도로서 정치와 문화의 중심이다. ‘영국의 아테네’라고 불리며 특히 프린시스 스트리트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가라고 한다. 이 시가에 맞선 곳에 에든버러 성(城)이 있어서 관광객이 그치지 않는다. 해마다 베풀어지는 에든버러 축제는 국제적인 행사로 되어 있다. [편집] 글래스고(Glasgow)인구 약 67만(1996). 스코틀랜드의 수도로서 상공업, 특히 철강과 조선(造船)의 도시로서 알려졌다. 시가는 크라이드강을 따라 남북 양안(兩岸)에 발달하여, 하구부근은 부두가 늘어서 있다. 글래스고의 남쪽 48㎞에 있는 프레스트위크 비행장은 국제 공항이다.그 외에 던디는 위스크·마공업(麻工業)의 생산으로 알려져 있으며, 애버딘은 어업기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편집] 벨파스트(Belfast)인구 27만 7,107명(2001). 북아일랜드의 수도로서 라간강의 유역에 있다. 북아일랜드 특유의 파란숲의 작은 언덕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도시로서 벨파스트 린넨으로 세계에 알려져 있는 마제품(麻製品) 외에도 조선(造船)·담배 등의 공업이 발달해 있다. 벨파스트 항에 있는 두 조선소는 세계적인 규모이다. [편집] 런던데리(Londonderry)보통은 ‘데리’라고 불리고 있으며, 영국의 문호(文豪) 사커레이가 시(詩)로써 읊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북아일랜드의 가장 오랜 도시이며 1689년에 이 도시가 제임스 2세의 군대에 포위되어 105일 동안 사수(死守)했다는 사실(史實)이 유명하다. 공업으로서는 셔츠의 생산지로 알려져 있다. |
[편집] 행정 구역
- 이 부분의 본문은 영국의 행정 구역입니다.
영국의 행정 구역은 꽤 복잡하게 되어 있다. 우선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잉글랜드, 웨일스의 구성 국가들로 나뉜다. 각 구성 국가마다 자체적인 행정 구역 체제가 나뉜다.
- 잉글랜드의 행정 구역: 잉글랜드는 9개의 지역(region)으로 나뉘어 있다. 각 지역은 다시 48개의 주(county)로 나뉜다.
- 스코틀랜드의 행정 구역: 스코틀랜드는 32개 주(council area)로 나뉜다.
- 웨일스의 행정 구역: 웨일스는 22개 주(unitary authority)로 나뉜다.
- 북아일랜드의 행정 구역: 북아일랜드는 26개 주(district)로 나뉜다.
그 밖에 해외 영토(overseas territory)들과 왕실령(crown dependency)들이 존재하나, 이 지역들은 형식적으로는 영국 영토로 간주되지 않는다.
[편집] 정치
영국은 근대 의회민주주의의 발상지이며 오랫동안 모범적인 양당 정치를 구현해온 나라로서 오늘날 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정치체제인 의원내각제를 발전시킨 나라이다. 정치체제는 입헌군주제로,‘군주는 군림하여도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의해, 권한 행사는 내각의 조언에 의하여 행해지고 있다.그리고 성문(成文)의 헌법은 없으며, 정치의 기본은 전통·관례·약간의 기본법(대헌장, 인권선언, 의회법 등)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19세기 후반에 확립되었으나 북아일랜드는 독자적인 의회와 행정부를 가지고 있으며 스코틀랜드 성(省)의 관할 밑에 놓여 있다. 의회는 상원(The House of Lords)과 하원(The House of Commons)의 양원제로 되어 있고 선거에 의해 선출되며, 상원은 약 1,190명의 의원으로, 하원은 651명의 의원으로 각각 구성되어 있다. 상원은 최근까지 '귀족들을 위한 의회'였으나 1997년 토니 블레어 총리 집권 이후 이탈리아와 같이 직능 대표 단체로 만들기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들이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또 영국 정치의 특징으로선 2대 정당제를 들 수 있다. 과거에는 보수당과 자유당이 양당 체제를 이루었으나, 1차 대전 이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대신 노동당이 등장하여 새로운 양당체제가 성립되었으며 근래에 들어 노동당에 실망한 국민들이 지지하는 개혁적 자유주의(중도좌파)정당인 자유민주당이 제3당으로서 크게 성장하고 있고, 극우정당인 BNP(British National Party)등이 등장했으나 기본적인 양당체제의 틀은 아직 유지 되고 있다. 2007년 현재 국가수반은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이고, 총리는 고든 브라운이다.
[편집] 주요 정당
2005년 5월의 영국 국회의원(하원) 총선거에서 10석 이상 확보한 정당을 순서대로 정렬했다.
- 영국 노동당(35.3%, 356석)-지도자: 고든 브라운. 현재 여당, 전통적 중도좌파정당. '제3의 길' 최초 발상지.
- 영국 보수당(32.3%, 198석)-지도자: 데이빗 캐머런. 전통적 중도우파정당. 최근 환경정책에도 주력.
- 영국 자유민주당(22.1%, 62석)-지도자: 멘지스 캠벨. 개혁적 자유주의(진보)정당. 이라크전 반대.
기타 정당으로, 2007년 5월 스코틀랜드 지방(의회)선거에서 여당(37.3%, 47석/129석)이 된 스코틀랜드 국민당(1.5%, 6석. 중도좌파)등이 있다.
영국은 의원 내각제, 즉 의회가 곧 내각이 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선거제도는 대한민국이 2000년까지 취해오던 소선거구제 아래에서, 각 선거구마다 마음에 드는 후보 1명만을 뽑는 'First-past-the-post'방식이다. 보통 4년마다 열리는 선거에서 의석수의 과반 이상을 확보한 당이 집권당이 되며, 이들이 내각(Cabinet)을 구성한다. 야당은 예비 내각(Shadow Cabinet)을 구성하여 집권시 어떤 정책을 실시할 것인가를 국민이 미리 알 수 있어 정치의 안정성과 지속성을 보장하고 있다. 현재 범야권 지도자(Leader of the opposition)는 보수당수 데이빗 캐머런이다.
영국의 사법은 기본적으로 영미법에 바탕을 둔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불문법 체계를 바탕으로 한다. 예컨대 판례법 주의(제정법은 판례법을 보완 함), 배심원 제도 등이 있다.
한국과 차이가 많이 나는 사법 제도 중 하나는 변호사 제도 이다. 영국에서 법정에서 변론하는 변호사를 바리스터(Barrister)라고 하며 일반 변호사는 솔리시터(Solicitor)이라 한다. 의뢰인은 솔리시터에게 모든 소송 내용을 맡겨야 하며 의뢰인과 바리스터의 접촉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법정 변호사인 바리스터의 객관적 재판 진행을 위한 장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편집] 군주제
영국의 군주제(君主制)는 적어도 1,100년 전에 시작되었다. 여왕은 829년 잉글랜드를 통일한 에그버트 왕의 직계 후손이다. 군주제의 역할은 수세기를 내려오면서 변화되었다. 초기 군주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이는 의회와 사법부의 발달로 축소되었다. 왕과 의회의 권력 투쟁으로 1689년 제한된 입헌 군주제가 확립되었다. 근대적 정치 제도의 확립과 함께 19세기 말에는 정치면에서 군주의 능동적 역할이 최소화되었다. 오늘날의 군주로서 현재 여왕은 국가의 중립적 수반의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 여왕은 행정부와 사법부의 수반, 전군 최고 사령관, 영국 국교의 수장이다. 그러나 정치적 결정은 각료들이 내린다. 영국은 여왕의 이름하에 제국 정부가 통치하는 국가이다. 여왕은 상징적 중요성을 지닌 정부의 몇가지 역할을 아직 수행하고 있다. 여왕은 의회를 소집, 해산하며 법안을 재가한다. 또 총리와 각료들을 포함한 주요 관리들을 공식적으로 임명한다. 여왕의 임무 수행 불가능시를 대비하여 섭정을 임명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섭정은 여왕의 맏아들인 웨일즈 왕자가 되며 그 다음 순위는 왕위 계승 서열에 따르지만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여왕이 부분적으로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지거나 해외 여행으로 부재 중인 경우에는 여왕의 어떤 임무를 임시 섭정들(여왕의 남편인 에딘버러 공, 그 다음 왕위 계승 서열이 되는 4명의 성인(成人)들, 여왕 모후)에게 위임할 수 있다. 그러나 임시 섭정들은 의회를 해산시키거나 작위를 수여할 수 없다. 군주제의 한가지 특징은 공식적인 면과 비공식적인 면이 결합된다는 점이다. 전통적 의식은 아직도 중요한 일부이다. 왕실의 결혼식과 장례식은 국가 행사이다. 6월에 공식적으로 열리는 여왕 탄신 기념식 때 여왕 근위병의 열병식인 군기 분열식이 행해진다. 외국의 국왕이나 국가 원수가 영국을 방문하면 공식 연회가 베풀어지며 작위나 훈장 수여식은 버킹엄궁과 스코틀랜드 홀리루드 하우스 궁에서 열린다. 군주제는 TV를 통해 또는 국민들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더 친근해졌으며 왕족들이 일반인들을 만나기 위해 거리를 걷는 것도 왕실의 중요한 특징이다.매년 여왕과 왕가의 구성원들은 영국 곳곳을 방문한다. 그들은 또한 많은 자선 단체들의 사업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웨일즈 왕자는 소기업과 도시 빈민가의 자영업을 장려하기 위해 설립된 프린시스 트러스트(Prince's Trust)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여왕은 에딘버러 공과 함께 외국 정부를 공식 방문하며 영연방 국가들을 순시하기도 한다. 왕가의 다른 구성원들도 외국을 방문하며 이때 여왕을 대신하여 방문하는 경우도 있다. 54개 영연방 회원국 모두는 영국 여왕을 영연방의 수반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그 회원국들 중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자메이카, 바하마, 바베이도스 등 다수 국가들의 여왕이기도 하다. 여왕은 2년마다 열리는 영연방 정부 수반 회의에 참석하며 각국의 국가 수반으로 총리와 사적인 대화를 갖는다.
[편집] 외교
영국은 국제 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 이사국이며, G8과 북대서양 조약 기구, 유럽 연합의 회원국이다. 영국과 미국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에 있다. 미국과 유럽 이외에도 영국은 영국 연방, 아일랜드 그 밖에 영어 사용 국가들과 친밀한 관계에 있다.
[편집] 영미 관계
영국과 미국은 가까운 군사적 동맹체이다. 양국은 문화적으로 유사할 뿐만 아니라 군사적 연구와 정보 기구를 공유한다.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 미사일이나 트라이던트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구입하였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해리어(Harrier)와 같은 장비를 구매하였다. 미국은 또한 영국에 대규모 군대를 주둔하고 있다. 최근에, 영국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은 매우 친밀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예를 들면 토니 블레어와 빌 클린턴 및 이후 조지 W. 부시 대통령 간의 관계, 1980년대 마거릿 대처와 로널드 레이건 등의 관계가 그러하다. 현재 영국의 정책은 미국과의 관계는 영국의 "가장 중요한 2자간 관계"임을 표명하고 있다. [7]
[편집] 한영 관계
1845년, 영국 해군이 거문도에 상륙한 것이 영국인의 첫 방한(訪韓)이었으나 1885년 봄, 러시아의 남하정책에 의해 이 지역에 대한 영국의 영향력 약화를 우려한 나머지 거문도를 조선과의 일절 협의도 없이 불법 점령하였다. 그 후, 조선의 강력한 항의로 철수하였다가 20세기 일본이 조선을 점진적으로 지배하게 되자 영국은 한국에서 밀려났다.
광복 이전까지 아무런 통교도 하지 않던 양국은 1949년, 한영 수교합의가 이루어지고 영국이 한국전쟁때 미국에 이어 두번째로 가장 큰 규모의 국제연합 소속의 UN군을 파견함으로써 다시 맺어지게 되었다.
[편집] 민족
영국으로 넘어간 인종은 많으나, 5∼6세기에 라인 강 유역에서 옮아온 게르만 민족의 일파(一派)가 선주민과 혼혈되어 앵글로-색슨으로 되어 현대 영국인의 기초가 되었다.
[편집] 언어
영국은 United Kingdom이란 말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연방 국가이다. 따라서 잉글랜드 외의 연방을 구성하는 웨일즈어나 아일랜드 게일어, 스코틀랜드 게일어(게일어는 켈트계 계통의 언어) 등 켈트계에 속하는 언어들이 쓰이고 있다. 2005년 웨일즈어와 스코틀랜드 게일어가 공용어로 지정 되었다. 웨일즈나 스코틀랜드에 발행하는 공문서에는 영어와 자체 언어 두 언어가 병기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두 영어를 공용어로 교육하고 있으므로 언어의 통일성에는 문제가 없다.
[편집] 종교
종교를 가진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도이다. 종교별 분포도는 다음과 같다.
[편집] 관련문서
[편집] 문화
[편집] 스포츠
[편집] 축구
- 이 부분의 본문은 영국의 축구입니다.
영국은 "축구 종가"라는 별칭 그대로 축구의 발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영국은 월드컵 예선이나 본선, 국가대표 경기, 청소년대표 경기 때에는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잉글랜드, 웨일스로 나눠 출전한다.
[편집] 주요 행사
| 법정 휴일 | |
|---|---|
| 일자 | 이름 |
| 1월 1일 | 설날 |
| 1월 2일 | 설날 (스코틀랜드 만) |
| 3월 17일 | St Patrick's Day (북아일랜드만) |
| 부활절 직후 일요일 가까이의 금요일 | 성 금요일 |
| 부활절 직후 일요일 직후의 월요일 | 부활절 직후 월요일 (성 월요일, 스코틀랜드를 제외한다) |
| 5월 첫째 월요일 | May Day |
| 5월 마지막 주 월요일 | Spring Bank Holiday |
| 7월 12일 | Battle of the Boyne - Orangemen's Day (북아일랜드만) |
| 8월 첫째 월요일 |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 만) |
| 8월 마지막 주 월요일 | Summer Bank Holiday (스코틀랜드를 제외한다) |
| 11월 30일 | St Andrew's Day (스코틀랜드 만) |
| 12월 25일 | 크리스마스 |
| 12월 26일 또는 27일(1) | 복싱 데이 |
[편집] 관광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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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관광명소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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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런던탑(London Tower)중세기의 성으로서 시티의 동쪽, 템스강의 북쪽에 있다. 노르만 왕조에서 19세기까지는 군사상의 성이며 동시에 국사범(國事犯)의 감옥으로서 고문소(拷問所)이기도 했다. 그밖에 요새, 왕궁, 보석관, 무기고, 동물원, 감옥 등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은 무기와 보물 등 광대한 수집처로 유명하다. [편집]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세계 3대 박물관 중 하나로 전성기의 그리스 문화와 고대 이집트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다. 1759년에 세워졌으며, 1823년부터 50년까지 약 30여년에 걸쳐서 83개에 이르는 크고 작은 방으로 건축되어졌다.대영박물관은 4층건물로 주요한 전시물은 주로 1, 2층에 전시되어져 있다. 3대 인기전시물은 미이라, 엘진 대리석, 5천년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로제타 스톤이며, 앗시리아 라마스 상, 람세스 2세, 파르테논 신전, 네레이트 제전, 아메노피스 3세, 목각의 관 등이다. [편집]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고딕건축사원으로 국회의사당의 서쪽, 파알라멘트 광장 남쪽에 위치해 있다. 웨스트 민스터는 약 250여년에 걸쳐 1503년에 완성되었으며, 42명의 왕과 여왕의 대관식을 가진 곳으로 3천 여구의 시체가 묻혀 있다. 사원 입구에는 처칠의 묘, 무명용사의 기념무덤이 있는데 음악가의 묘소, 정치가의 묘소, 중심부, 성가대석, 엘리자베스 1세의 묘, 헨리 7세의 예배당, 에드워드 예배당, 시인의 장, 스코틀랜드 여왕 메어리의 묘, 회중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 버킹검 궁전(Buckingham Palace)트라팔가 광장의 서남쪽에 위치해 있으며, 1873년 버킹검 공의 사저로 세워졌으며 영국 국왕의 공식적인 궁전이다. 궁전 내부는 공개되지 않고 있으며, 대규모의 왕실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을 구경할 수 있다. 유명한 왕실 근위병 교대식이 격일로 행해지며, 또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여름휴가기간인 8월초부터 약 2달동안에는 특별히 버킹검 궁전을 개방하고 있다. [편집] 세인트 폴 성당(St. Paul 聖堂)웨스트민스터 성당에 견줄 만한 대사원. 현재의 건물은 런던의 큰 화재 뒤에 크리스토퍼 렌의 설계에 의해 지어진 것으로 르네상스 식의 훌륭한 건축물이다. [편집] 윈저 성(Windsor Castle)템스강변에 구축된 성채로 중앙의 대원탑(大圓塔)이 중심이 되어 마치 좌우로 날개를 편 것 같은 형태이다. 좌익(左翼)의 구성은 정원으로 둘러싼 정청(政廳)과 주거지역이 중심이고 우익(右翼)은 대표적인 왕실 예배당의 하나로 손꼽히는 성 조지의 채플(15세기)과 이를 둘러싼 성벽·탑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한 각 시대의 유서깊은 갖가지 유구(遺構)가 건축가들의 개성과 세월의 흐름이 어우러져 녹음으로 둘러싸인 성 전체에 독특한 통일·조화를 준다. 귀중한 사료(史料)와 방대한 미술품의 콜렉션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왕립도서관에 소장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초대형 데생이 유명하다. [편집] 그리니치(Greenwich)템스강 만곡부(灣曲部)의 남안에 있으며 해군대학과 천문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런던의 확대로 관측이 곤란하게 되었으므로 천문대는 1958년에 서섹스의 허스트먼수로 옮겼다. [편집] 이스트엔드(East End)·웨스트엔드(West End)이스트엔드는 빈민가, 웨스트엔드는 고급 주택가로서 알려져 있으나 현재 고급 주택은 교외로 옮긴 뒤 하숙·여관이 늘었으며, 빈민가는 대전 후의 재개발과 사회보장에 의하여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편집] 스트랫퍼드 언 에이번(Stratford-on-Avon)시의 중앙에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집이 있으며, 셰익스피어 기념극장에서는 왕립 셰익스피어극단에 의한 공연이 4∼10월에 베풀어진다. [편집]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영국의 영웅 넬슨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1841년에 완성된 광장이다. 실물의 3배 크기인 560㎝의 넬슨 제독의 동상과 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영국의 국가동물인 라이온상, 분수 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영국다운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라이온 동상은 대승을 기념하는 뜻으로 노획한 프랑스의 대포를 녹여서 만든 것으로 4면의 철판부조에는 트라팔가 해전, 나일강 해전, 덴마크·러시아·에스파냐 연합함대와의 전투기록이 담겨져 있다. [편집] 국회의사당과 빅벤(Big Ben)템즈 강가에 있으며 전통있는 영국의회정치의 전당이다. 이곳은 원래 궁전이었는데, 현재 건물은 대화제 이후 재건된 것이다. 고딕 양식으로 1천개 이상의 방을 갖추고 있다. 그 유명한 빅벤은 높이 95m로 아직도 손으로 태엽을 감는 전문적인 시간지기가 있다. 꼭대기 조그만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며, ‘의회중’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야경이 특히 아름답다. [ |










































